어떤 조문
지난 일요일 서울까지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였다.
집안 대부분 수도권에 살다보니 인척들이 가끔 운명해도 지방인 광양서 서울까지 장례식장을 찾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이번에는 열일을 제켜놓고 다녀왔다.
그 열일을 제켜야 할 분은 사촌인 관순이 누나다.
얼마 전 아들 결혼에 "상도동 한숙자"라는 이름으로 축의금 봉투가 있어 이름이 생소해 수소문 해보니 그 누님의 이름이 "한숙자"라고 하여 칠십년을 관순이 누나로 알고 살아왔는데 코마 상태에 계신 누님의 이름으로 된 축의금 봉투를 보며 조카들의 성의에 감사함을 느꼈다.
파킨슨 병을 앓다가 4년여 전쯤인가 새로운 치료법이 있다하여 시도 하였는데 부작용으로 의식을 잃고 그렇게 몇년을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2 년 전쯤 병문안을 다녀온적도 있었는데....
그 때는 알아 보는 것 같았는데..
이 누나에게 나에게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 고딩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이 누나 집에서 몇개월 기숙한 적이 있다.
조카 공부 봐준다는 명목으로...
박봉의 가정에 5 명의 조카가 있었고 매형과 같은 직장에 다니는 분이 잠시 함께 기숙도 하고...
정릉 청수장 가는 길 좌측 산동네에 방이 두칸에 거실이 있었던 집으로 나까지 건사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이 누나에게 작은 아버지 였던 가친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였으리라
형이 없었던 누나집 큰아들인 조카는 막 사춘기로 나를 삼촌(당숙)으로가 아닌 형으로 잘 따랐다.
상수도가 없어 매형이 쉬는 날이면 마당 한 가운데 우물을 파시기에 손을 보태기도 하였는데 그 매형이 돌아가신지도 20여년은 된 것 같다.
누님은 친절했고 자상했으며 말도 조곤조곤 하는 등 깔끔한 성격으로 음식도 잘했는데 그 중 파김치가 유난히 맛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누님을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생전에 자주 찾아보지 못 했고 운명하시기 전에 한번 더 병문안을 가야지 했는데 아쉬움을 남기고 가셨다.
살아오며 수많은 이별이 있었지만 유독 관순이 누나의 운명이 가슴에 아련히 와 닿는다.
어제 조카에게서 삼오까지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연락왔었고 오늘 또 감사인사로 메세지가 와서
"그동안 수고했네... 누님이 매형을 만나 하늘서 내려다 보며 그 동안의 이야기 들려주며 자네 형제들의 행복을 기원할걸세"
라고 나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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