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세밑에서...

해오름kr 2022. 1. 30. 21:43

설이 되면 없는 살림이지만 기름내 가득한 좁은 집안팎에서 이름 아침 한상 그득이 차려진 차례상을 물리고 설빔으로 받은 옷이나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부모님께 세배 후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나섰던 시절이 떠오른다. 일찍 고향을 떠나온 우리형제가 찾아볼 고향 어른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집에 있다보면 고향사람들 중 거의 최고(?) 어른이었던 가친을 찾아오는 고향사람들의 방문에 빈한한 우리집 문턱이 닳았다.

특히 어릴 때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를 이어 막내누나가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어린 나이에 고생했고 형 결혼 후에는 형수가 그 자리를 채워 설명절 가친께 세배오는 손님 접대을 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없는 살림에 제법 많이 준비한 가래떡과 설빔 음식들은 하루가 지나면 바닥을 보였으니 가친께 세배오는 사람들의 수를 미루어 짐작케  한다.
산골짜기인 촌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고 있던 고향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계속 서울에 살았다면 고향사람들과 연이 이어져겠지만 가친께서 내가 제대한 다음해에 세상을 떠나셨고, 호구지책을 위해 포항에 정착하면서 그들과는 멀어졌고 결혼하기 전에는 친구 좋아하던 내 성향으로 수시로 상경하였는데 결혼 후 박봉에 가정을 유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원해지고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모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친구들간 반목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다행스럽게 고등학교 동기인 반창회는 귀거래다방과 허리우드다방, 오늘날 카톡방으로 이어지면서 졸업 후 반백년이 되가는 지금에도 소식을 접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제라도 소원했던 행사나 모임에 가능한 참석하고자 한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며 맞는 세밑이 즐겁기보다는 자못 쓸쓸한 마음이 든다.
어머니의 기일은 칠석이고 가친의 기일이 설 다음날이다 보니 가능한 기제사를 지내러 일년에 두번씩은 서울 형님댁으로 다니었는데 몇년 전 형님이 종교를 가지고 기제사를 추도예배로 한다 하고, 원거리다 보니 기제사에 참석하면 형님댁에서 숙식하는 것도 예전과 다르게 편하지 않고, 해외생활 오래하여 기제사에 참석 않고, 이제는 이 촌구석에서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기다리다 보니 다소 걱정은 앞서나 원거리 이동에 분주하지 않아 몸이 편하기는 하건만 마음은 편하지만 않다.

작년 설에는 큰딸이 손자들과 찾아와 북적거렸고 코로나 정국에 모임 정원이 초과되 혹시 이웃이 신고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그나마 큰딸이 중국에 가서 살고 있으니 당분간은 그런 북적거림도 없을 것 같다. 내년 설도 특별히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식구가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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