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40여년의 성상을 광양에 살며 이웃간의 친목을 쌓아오던 친구가 자녀가 살고 있는 나주로 삶의 터전을 옮겨 겸사겸사 나주를 찾았다.
노무현 정부 때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방 활성화를 위하여 공기업을 지방으로 보냈는데 나주는 한전이 해당되 자원 특화단지로 자리매김을 해 부영CC가 있던 자리에 일명 한전공대(?)가 들어서 올해부터 수업 중이고 현재인구 3만인데 5만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세종시도 그 일환의 한 부분으로 행정신도시가 되었는데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것만 아직도 진행 중으로 선거 때만 되면 뜨거운 감자로 행정부를 세종으로 옮긴다 하면서 공염불로 그치고 있다.
지난 410 총선시 여당인 국힘당에서 공약으로 행정부 이전을 하고 대통령실 제2청사도 한다고 했으니 두고 볼일이다.
예전에는首丘初心이라 하여 나이를 먹으면 고향을 찾는데 요즘은 자녀들이 사는 근처로 찾아간다. 나도 딸 둘은 포기했지만 막내인 아들이 근방에 살기에 얼마나 다행일까 싶다.
친구 딸 부부가 한전에 근무하여 후생시설인 콘도를 예약하여 같이 모임을 하던 멤버들이 부부동반해 모였다.
콘도는 방 두 개에 큼직한 거실로 나주호 연안에 있어 주위가 고즈녁하여 분위기는 좋았고 호수가로 테크 잔도를 포함 오솔길은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날이 좋으면 호수를 바라보며 테라스에서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우천으로 테라스에서의 낭만은 누릴 수가 없었고 부인들이 푸짐하게 준비한 음식으로 오랜만에 회포를 풀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 모임은 일명 "사랑" 모임으로 한 지역 아파트 단지의 이름으로 같은 동에 살던 또래들 부인들이 만든 모임으로 수십년을 부부가 장기집권(?)하여 회장과 총무를 하고 있다.
부인들은 매월 모임을 하고 몇년걸러 부부동반 해외 및 국내여행을 어울려 다니고 가끔 부부동반 모임도 갖는다.
나이를 먹으니 대부분의 모임이 소원해지고 깨지는데 비해 이 모임은 아직도 활성화 되는데는 회장 부부의 공이라 하겠으며 특히 총무를 맡고 있는 부인의 공이라 하겠다.
나는 그 총무를 볼 때마다 감사를 표하곤 한다.
처음 시작 8 명 중 첫번째는 강릉 고향을 찾아갔고 두번째는 나주로 갔는데 앞으로 어찌할지는 부인들이 알아 할 일이다.
세번째가 회장 부부가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된다. 강화도에 텃밭이 있어 그 먼길을 2주에 한번씩 다녀온다 하는데 아직 말은 없지만 떠날 준비를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은 아닌 것 같다.
나주호 주변은 아직 크게 관광지화 하지 않았고 나주 신도시의 전망대를 찾아보았다. 나주 호수공원 중앙에 있는 배매산 빛가람 전망대이다.
그 옜날 영산강이 물이 여기까지 들어차 어선들이 배를 매어 놓았다 하여 배매산이라 하며 빛가람은 광주의 빛광과 강을 우리말로 가람이라 하여 영산강을 의미하는 뜻으로 빛가람이라 하였다 헌다.
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도 있었는데 아직은 모두 걷는 것이 가능하기에 걸어 올라갔다. 밑에서 볼 때 멋졌는데 옥의 티라 할까 전망대 한쪽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들이 칠이 벗겨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전망대는 배메산 정상(?)에 5층 높이였으나 흐린 일기로 멀리 월출산, 무등산 등은 볼 수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 전시관에 들꽃이 전시되 돌아보았고 시청각 관이 있었는데 기대보다 미흡하였다.
전망대에서 나주가 고향으로 귀향해 살고 있다는 분의 자세한 설명과 직접 땄다는 야생 호두를 선물 받았다.
배메산 주위는 지금도 둘레길, 맨발길 등을 개발 중이었으며 주위는 호수라기 보다는 습지에 가까웠으며 배매산을 한바퀴 도는데는 10여분 남짓으로 습지 주변의 나무들은 몇년만 지나면 탕방객애게 그늘도 제공할 수 있으리라
휴일인 관계로 어렵게 찾은 식당에서 가성비 좋은 낙지 탕탕이, 회덮밥, 전복 큰게 두개나 들어있는 살코기 매운탕(?)으로 모두가 만족스런 점심을 먹고 찾아본 곳은 조선시대 나주목 객사로 사용했다는 금성관을 찾았다.
주변은 온통 나주곰탕집이며 언젠가 찾았던 기억이 떠 올랐다.
조선시대 한양처럼 사대문이 있었고 지금은 일부라도 복원하려 한창 공사 중이다. 조선시대 지방관리의 직계가 도관찰사, 목사, 군수, 현감, 현령 등으로 내려가니 목사라 함은 제법 직계가 높음을 알수가 있다.
전라도가 조선시대 때 전주와 나주의 첫글자를 따 전라도라 하였던 만큼 그 옜날 나주의 번성함을 알게 하였고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바다로 우회하여 나주를 정복하였으며 원나라 침공 때는 고려왕이 나주까지 후퇴하였다 하니 나주의 흥망성쇄가 어른거린다.
나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친구가 지근거리에 딸과 사위, 손자들이 있어 좋다하였는데 근처에 배매산 호수공원 같은 쾌적한 쉼터가 있어 건강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을수 있는 것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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