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느 喪(Indonesia)

해오름kr 2015. 2. 4. 16:27

인도네시아 와서 첫정을 준 분이 세상을 떠났다.
우연의 일치지만 각별한 인연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후배에게 연락하니 자기 막내 여동생이 인도네시아에 결혼하여 살고 있다 하면서 시부모가 식당을 하니 찾아보라고 식당이름을 대기에 가볍게 그러마 하고 식당이름도 잊은채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
도착 후 마중온 관리이사와 저녁 먹은 후 기사가 숙소까지 데려다 줄 것이라는 말만 해주고 가버렸다.

당초 "당분간 호텔에 계시면 됩니다."하는 말을 들었는데 도착한 곳은 어느 주택이었다.
기사가 초인종을 누르고 웬 아줌마(식모)가 나와 방을 안내해 주었다.
2층의 넓다란 방에 옷장과 욕실이 따로 있는 것이 웬만한 호텔의 특실보다 큰 것 같다.
짐을 정리하고 하룻밤 자고, 아침을 먹으면서 주인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집이 하숙집(Gest House)란다.

그 전에 관리이사가 6개월 동안 묵었던 집으로 제일 좋은 방을 주라고 하여 이층방을 주었다 하는데 나이는 60 중반을 넘어 보이고 뚱뚱하며 말투도 싹싹한 편도 아니어 데면데면 하는데 저녁은 퇴근 하면서 식당에 와서 먹으란다.
이름이 고궁이라고...
퇴근 후 별생각 없이 식당에 갔는데 후배가 한 말이 생각났다.
정확하게 식당이름은 생각이 안났는데 비슷한 것 같고 젊은 아줌마가 있는데 사장님이 며느리라고 소개를 하였다.
후배 동생이 맞는 것 같은데 젊은 여자에게 쉽게 말을 건네기도 그렇고 하여 이틀인가 지나다가 긴가민가 하면서 "혹시 창환이 동생 아니세요?" 하고 물으니 반색을 하며 맞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맺은 것이 첫번째 인연이다.
만리타국인 이곳에 와서 후배가 이야기 한 동생의 시댁에 하숙을 한다는 것은 인연치고는 큰 인연이었다.
본의 아니게 하숙집 사장의 사돈 선배가 되어 다른 사람보다 나은 대우(?)를 받으면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집 할머니도 한씨라고 하기에 어느날 항렬을 물었다.
항렬이 '교'자란다.
처음 듣는 항렬이다 보니 종친회 족보를 조회해보니 나보다 4대가 높았다,
나도 고향에 가면 제법 높은 항렬인데 4내가 높은 항렬은 본적이 없었다.
그때부터 할머니(?) 겸 누님(?)겸 편하게 지냈다.

이게 두번째 인연이다.
이 분이 나이에 비해 성격이 까칠하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나하고는 서로 코드가 잘 맞았다.
하숙집이 크게 불편할 일이 없었다.
인도네시아에는 종교확성기 때문에 잠자기 어렵다는데 별로 그런 것도 못느끼겠고
아침저녁 주고 세탁까지 해주니 혼자 사는 남자가 더 이상 불편할 일이 없는 상황이다.
이 들었으리라
그 뒤로도 가끔 동료나 집사람하고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하숙생 소개도 시키고 하면서 지속적으로 인연을 이어왔고 정도 들었다.

그런데 그런 그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불과 2주 전에 집사람과 가서 밥을 먹고 반찬도 가져왔었는데...
70세이다.
예전 같으면 오래 살았다 할 나이이지만 요즘은 서운한 나이이다.

회자정리라 하지만 정든 사람이 떠나가는 것은 슬픈일이다.
살아가면서 헤어짐의 순간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가슴아픈 일이다.
그리고 와이프가 와서 10일정도 하숙집에 같이 지냈는데 데리고 시장도 가고 맛사지 집도 가는 등 동생처럼 잘해주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내는 동안 하숙집에 계속 살아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집사람이 인도네시아 와서 산다기에 주택을 얻어 하숙집을 나오는데 내가 좋아한다고 생채나물을 따로 만들고 김도 구어 주는 등 한동안 혼자 살아도 전혀 불편이 없도록 반찬을 챙겨주었다.

아마 동생같은 생각이었고 오랜동안 각박한 해외생활에 부대끼면서 여자이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크다보니 사람의 정이 그리워서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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