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6.25 남친과 통일에 대한 소견

해오름kr 2020. 6. 24. 21:08

내일이 6.25남침 70주년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한단계 상승을 바라면서 북한에 호의적(?)인 문정권이 들어서 뭔가를 이뤄낼 것 같았는데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지속되어 울고 싶은데 보수(?)로 포장한 몰지각한 단체(탈북자 단체)서 뺨을 때려주니 개성공단 내 남북한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GP에 대남방송 스피커를 설치, 대남삐라를 준비, 각종 매체서 대통령 및 남한 정치에 대해 막말을 해 정부 당국자들을 곤혼스럽게 하였는데 24일 갑자기 김정은이 대남 군사행동을 전면 보류하는 유화적인 조치를 내놔 경색된 정국이 다소 수그러지고 있어 다소 안심이 된다.
새삼 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주창한 햇살정책이 떠 오른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남침은 20세기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볼세비키 혁명을 성공하고 전세계의 공산화에 혈안이 되어있는 소련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날무렵 참전해 1945년 12월에서 열린 모스코바3상(미영소 외상)회의서 한반도를 반으로 나누어 신탁통치를 하는 것으로 진행하였으나 남측에서 반탁운동을 진행되는 가운데 남쪽에서 미국의 승인하에 정부수립을 하고 분단이 공고히 됬으며 소련은 승전 전리품으로 38선 이북을 자연스럽게 공산화 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 카이로 회담에서 중국 장제스가 일본이 커지는 걸 막으려고 한국의 독립을 적극 주장하였고 ​얄타회담에서 일본을 반으로 나누어 소련과 미국이 각각 점령하려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이 로비를 벌여 미소의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고 소련이 오기 전에 미국에 잽싸게 항복하였다.


[펌글]
* 제2차 세계대전 때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2차례의 회담, 1차는 1943년 11월 22~26일에, 2차는 1943년 12월 2~7일에 이루어졌다. 1차 회담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 중화민국 장졔스 총통이 모여 세계대전에서 대일전에서의 협력과 일본의 영토문제에 관해 결정하고 카이로 선언으로 발표되었다. 미국은 일본을 키워 소련의 남진을 막기위해 한반도를 일본 영토로 인정하려 했다.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해 남침 준비하는 북한을 부추긴 결정적인 사건은 미 국무장관 애치슨의 발언이었다. 1950년 1월 12일 애치슨은 "미국의 방위선은 알류산 열도,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등을 묶는 선이며, 한국은 이 방위선에서 제외하였다. 이어 그는 한국에 군사적 공격이 생겨도 먼저 공격받은 국민이 저항하고, 다음에는 국제 연합헌장(UN) 밑에 전 세계가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미국의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공산화 확장에 혈안이 되 있는 소련은 북한을 앞세워 침략 전쟁을 일으켰고 세 불리해지자 중국까지 끌여들여 전쟁이 확대되고 장기전으로 되면서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한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한단계 도약할 계기가 되어 오늘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6.25 남침은 있어서는 안될 전쟁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냉전시대를 여는 시기에 최강대국이 된 미국의 여러가지 정책 실패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미국이 625 전쟁에 깊이 관여하게 된 이유도 우리나라가 공산화되면 일본을 포함한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가 위협을 느낀 것이다.

위의 사례들은 역사에 기록된 것으로 대부분의 식자들은 알고 있을 것으로 보는데 친미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을 숭배하고 아직도 친일하는 사람들은 조상이 어느나라 사람인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나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김일성과 3대째 세습으로 북한을 경영하는 그 일가들을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삼국통일도 순수하게 우리의 힘으로만 통일된 것이 아닌 당나라의 힘을 빌렸고 그나마 3국 전체를 통일한 것이 아닌 한강 이남의 부분적 통일이었다.

지리적 여건이 강대국의 이권다툼과 여전히 침략근성을 버리지 않는 일본의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일본은 지진과 화산활동 자연재앙 및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 등 환경적인 요인으로 절대 한반도를 그냥 두지 않을뿐더러 근래는 경제적인 이유로도 더더욱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6.25남침에 대한 생각은 각각 다를 수 있다. 하지만 70년 전의 전쟁의 피해의식 때문에 통일로 가는 길을 포기할 수 없다. 국민을 포함한 위정자 모두는 통일로 가는 걸음을 느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뒤로 가면 안될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가 수치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 하지만 국가의 성장동력이 미약한 우리나라는 북한의 개방으로 한단계 상승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금번 코로나19의 사태로 보더라도 수출이 경제의 주가 되는 우라나라 입장에서는 북한과 당장은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교류로 북한의 자연자원 및 인적자원을 충분히 이용해야 하고 관광 및 산업지원 등으로 자연스럽게 북한의 경제를 끌어 올리다 보면 통일의 길에 한 걸음 다가설 것이다.

명색이 보수(?)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통일되면 그땐 무엇을 대상으로 아우성 칠까 걱정된다.
하지만 목소리만 키우고 헛소리만 해대는 그들이 무서워서 통일로 가는 길에 소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6.25남침을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지만 그로 인해 통일로 가는 길이 미뤄지지 않을 염원을 담아 6.25남침 70주년을 맞으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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