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인니여행 다섯 째날(3/11 : 월)

해오름kr 2024. 3. 21. 23:39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힌두성일로 쉬는날이다. 화요일까지 대체휴일로 쉰다고 하여 슈카부미 바다를 가서 생선구이 먹고 온천을 다녀오기로 하였는데 기사가 아프다고 안와 포기하였다.

이곳 인니에서는 운전기사와 가정부 또는 파출부를 잘 두면 반은 성공한 것이라 하는데 친구는 운전기사가 말썽이다. 예전에 썼다가 해고 후 1년 동안 취직못해 재고용 했다 하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고쳐진 것 같지 않아 다시 해고해야겠다 한다.

나는 6년 동안 있으면서 기사때문에 속상해 본적이 없다. 회사 기사로 아웃소씽을 하였는데 애를 둘 키우면서 한번도 지각 결석을 한적이 없고 시간을 어겨본적도 없다.

아내가 함께 있을 때 입주가정부가 아닌 파츌부를 썼는데 몇명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대기하고 있다 일하게 된 파출부는 성실하고 일도 깔끔하며 정돈도 잘해 집사람 귀국하고 내가 두 번 이사하면서도 계속 함께하였다.
그녀는 시간제 파출부를 하면서도 웬만한 남자들 수입보다 많았다.
몇 년을 일했어도 직접 만난 것은 손을 꼽을 정도지만 신뢰가 쌓여 있었고 두 번 이사할 때 와서 혼자 다 정리정돈을 하여 나는 손 놓고 구경만 하였었다.

그래서 나의 인니생활은 즐겁고 행복했던 것 아니었나 싶다.

친구 기사가 못 온다 하여 내가 쓰던 기사에게 연락하니 하루는 가능한데 대체 휴일이 아니라 근무로 안된다 한다. 할 수 없이 친구와 산에 가기로 하였다.
내가 인니 있을 때 거의 2~3주에 한번씩 가던 산으로 내가 살던 찌까랑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리고 산행은 5~6시간 정도로 제법 빡센 상가부아나 산이다.

인니 온지 얼마 안되 운전기사가 내가 자연과 여행을 좋아하는 것을 눈치채고 큰 폭포가 있다하여 찾아갔었는데 차가 입구까지 못 가 비포장 도로를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다녀와 거의 일주일 동안 온 몸이 아팠다.

폭포에 처음 갔을 때는 다리가 전부 대나무였고 와룽(가게)도 몇개 없었으며 와룽을 지키는 아줌마들에게 서툰 현지어로 인사하고 말을 걸면 부끄러운 듯 받아주어 정감이 넘쳤었다..
40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수량도 풍부하고 장관이었는데 불과 1~2년사이에 콘크리트로 매표소 입구까지 포장이 되고 현지인들이 몰려오면서 다리는 콘크리트로 변했고 빽빽하게 와룽이 들어섰으며 폭포 옆에 흉물스레 지어진 탈의실은 내가 처음 느꼈던 정감이 달아나기에 충분하였다.
현지서 다니던 교회의 탁구동호회 회원들을 안내해 다녀왔었는데 그들은  무척이나 즐거워하였다.

폭포를 가끔 다니면서 산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는데 입구를 찾지 못해 헤메다가 현지인에게 물어보고 약간의 돈을 주고 가이드를 부탁하여 간 곳은 상가부아나 앞산 하리문이었다.

자그마한 폭포도 있었으며 산이 온통 빨간 진흙으로 커피나무가 많았으며 커피열매가 너무 많아 가지가 꺽어질 정도였고  그 커피 열매를 두 마대를 어깨에 메고 미끄러운 황톳길을 맨발로 내려오는 현지 젊은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를 다녀온 후 친구는 매년 그곳 커피원두를 한국 나른다. 커피 마니아가 전 직장 상사로 유대관계가 좋은 것 같다.

이산이 아니다 하고 다음에 가서 현지인에게 안내를 부탁하여 상가부아나 산을 찾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 되어 한달에 한두 번을 가면서 이곳 교민들을 안내해 교민들의 휴식처가 되었고
나는 자연스레 산악회 회장을 맡아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내가 떠난 후로 산악회가 시들 해졌다 한다.

그 산이 상가부아나로 산행과 함께 산에서 바로 딴 두리안을 먹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었다.
산행길은 뿌아사 전날이라 한산했다. 산행 초입 매표소에 돈고 안 받고가는 길 중간 중간과 정상의 와룽이 전부 문을 닫았다.

산 입구 매표소로 Puasa 전날이라 매표소 관리하는 사람도 없어 입장료가 굳었다.


이들은 뿌아사를 자기 집 또는 고향에 가서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 후 다시 이곳에 와서 생업(?)에 종사한다.

예전에 한창 다닐 때는 별 것 아니다 싶었는데 오르막이 쉽지가 않다. 세월이 지나면서 흙이 패이고 돌과 나무 뿌리만 남아있어 오르내림이 더욱 어려워졌다.

산행 초입의 와룽은 사람이 있어 오르면서 두리안을 부탁하였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쉽지 않았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자욱한 안개가 습도를 더했다.

정상의 모습은 안개와 함께 을씨년스러웠고 역시 정상의 와룽들도 사람이 없다.

중간 미처 못간 삼거리와 정상의 와룽이 텅텅 비어있어 썰렁하고 안개가 자욱하여 을씨년스럽다.



정상까지 오르내리며 함께한 일행이 있으니 초입 와룽서 키우는 점박이 )이다. 신통하게 우리가 쉬면 같이 쉬고 하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우리와 속도를 함께하며 하산길 입구 와룽까지 도착한 후 멀치감치에서 놀다가 입구 와룽에서 내려올 때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정상표시 및 표지석 1300m 미처 안되는데 산 들머리가 300m 조금 넘어 만만하지 않은 등산로이다ㅏ.

 

길잡이...묘한 녀석이다. 산 초입에 있는 와룽부터 정상까지 우리와 같은 속도로 길동무 한 후 처음 출발한 와룽에 도착하니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입구 와룽에 도착하니 두리안이 5개가 준비되어 까달라고 해서 먹고 남은 것은 플라스틱 용기 및 비닐봉지에 넣어 가져왔다.
5년만에 먹어보는 두리안은 맛있었다. 끝물이어 크지는 않았지만 한 개도 실패한 것은 없다. 여기 두리안은 씨가 굵어 과육이 작지만 현지에서 바로 따 먹는 싱싱함은 있다.

현지에서 먹는 싱싱한 두리안의 맛은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른다.



과거 인니서 일할 때 아내가 온다 하기에 럭엔락 큰 것에 그득 담아와 냉동시칸 두리안을 맛있게 먹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올만의 산행과 맛난 두리안을 먹을 수 있어 다시 찾은  상가부아나가 보람이 있었다. 많은 추억을 뒤로하고 돌아왔다.

 

우기의 끝으로 비교적 과일이 풍부한 계절이다. 두리안, 람붓단, 망기스 파파야 나무이다.

 

산에서 만난 각종 야생화다. 같이간 지인이 자연 찬회적안 사람으로 감성이 풍부하여 꽃을 보는대로 사진을 찍는다.
다랭이 논과 무덤이다. 인니는 건기 때 평야서 물이 없어 농사를 못지으므로 산 중턱의 물의 풍부한 곳에 다랭이 논이 많고 무덤은 집을 지어 관리하는데 내가 이산을 다닌지 10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멀쩡한 것이 후손들이 꾸준히 관리하는 것 같다.

 

산을 오르다 보면 멋진 나무가 한그루 있다. 반얏나무로 줄기가 뻩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자라는 나무로 보통 평야지역에 있어 나무의 외경이 수십미터 되며 높이는 높지 않은데 이 나무는 밀림지역에 있어 햇살을 보고자 약 40m  높이가 되며 줄기가 내려 뿌리를 내리므로 나무 사이에 틈새가 보인다.

 

여기는 커피 주산지이다. 아직 커피가 이제 달렸으며 8~9월 되면 딸 것이다. 습도가 높다 보니 나무 등걸에 큼직한 버섯이 달려있다.

 

나무에 기생하는 열매가 있는데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사리나무다 여기 고사리는 풀이 아니고 나무로 생존본능으로 햇빛을 보고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다.